504는 에피 순서가 507이었다가 504로 바뀐 경우인데  방영전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싶었다.  그런데  보고나니까  납득.

일단 메인 스토리 진행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봤는데  제작진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만든 에피인것 같다.

 

 

5시즌은 짧고 빠르게 진행될테니 뭔가 코멘트를 하더라도 전체 스토리를 보고 종영 후 하는게 나을거라 생각했는데  이 에피는 여러모로 좀 할말이 많아지는 에피여서 섣부른 감상을 내놔본다.  

 

 

 

 

 

504가 방영된 뒤 반응이 확연하게 갈렸고  그 이후로 양덕이나 한국팬들에게도 여러 해석들이 나왔는데

 

아마 눈치가 빠른 분들은 초반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일단 쇼의 탈출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쉬웠다는 것. 그리고 머신팀에 대한 묘사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쇼가 시설을 탈출해서  머신팀을 만났을 때 루트, 핀치, 리스의 반응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꼬집긴 어려워도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리스와 핀치는  죽었다 살아돌아온 쇼를 다소 냉랭하게 대하는데 어떤부분에선 로봇처럼 감정이 없어 보일 정도이다.  물론 리스와 핀치의 반응은 합리적인 게 사실. 지금은 누구도 무엇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되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유독 차갑고 무반응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반면에 루트는 그 어느때보다 다정하다. 루트가 오랫동안 쇼를 그리워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럴만 하지 싶다가도 은근히 놀라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머신팀의 태도 뿐 아니라 쇼 스스로의 행동과 말도  예전보다 훨씬 감정적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묘사와 설정은 어느정도 의도된 것으로 보임.

 

 

 

 

 

 

 

다음은  팬들의 해석 + 내생각을 합쳐 하나로 대강 정리해 본 것이다.

 

 

1.

사마리탄이 시도한 이 시뮬레이션의  목적 중 하나는  머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란게  쇼가 그 상황들을 현실이라고 믿고  무의식중에 자신이 기존에 알고있던 머신팀의 기지로 자연스럽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사마리탄이 그 시뮬레이션 안에 몇가지 장치를 해놓은걸 볼 수가 데  루트와 리스가 자꾸 머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거나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들이 그렇다.

 

(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인물들의 태도는 묘하게 낯설다.  특히 리스와 핀치의 행동을 보면 분명 이성적,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도.)

 

 

 

 

2. 쇼는 중간중간 정신을 잃었다가 깨는데 그때마다 자기 의지와 다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 리스를 쏜 것도  이대로 머신기지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압박감 + 이미 판단력과  자기통제력을 상당히 잃은 상태라고 추측된다.

 그동안은 쇼가  지하철기지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계속 다른 장소를 등장시키는등 상황을 피하며  버텨왔지만 정신력이 약해지면 리스나 루트를 따라가게 될테니  사마리탄의 목적에 걸려드는 것.  

 

만약 쇼가 정신을 놓고 무의식을 따라 가게 된다면 지하철기지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쇼가 탈출했던 것만큼 그리어가 손쉽게 잡혀온 것 역시  사마리탄이 심어놓은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어가 성당으로 잡혀왔을때 쇼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이 시뮬레이션의 또다른 목적이 '세뇌'라는 걸 알 수 있음. 그리어가 하는 말들은 쇼의 어떤 부분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뇌의 목적 중 하나는  '머신팀의 제거'가 아닐까 . 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쉽게 포기할 부류들은 아닌 듯.

 

 

 

4. 이 시뮬레이션에는 퍼스코가 등장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한가지는  쇼가 퍼스코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세계에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퍼스코는 머신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사마리탄이 굳이 인물 설정에 넣지 않았다는 가정이다.  이건 시뮬레이션의 설정에 쇼의 내면이 어느정도 영향  끼쳤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이런것들을  염두에 두고 다시보면 모든과정이  엄청나게 압축됐다는 것과  어딘가 낯이 선 캐릭터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그리고 팬들의 해석에 따르면  초반 시뮬레이션들은 이것보다 훨씬  조악했을 거라는 것.  사마리탄은 머신팀 멤버들이 각각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곳에 지내는지 아는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초반엔 쇼 역시 그 비현실을 더 빨리 깨닫고 나왔을 거라는 거다. 그러나 쇼가 반복적으로 인물과 상황에 어떤 패턴대로 반응하면서 머신팀 캐릭터는 변화했고  6741번째 시뮬에 등장한  머신팀 역시  쇼가  인식하는, 또는 억눌렀거나  감추고자 했던 의식이나 욕구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즉, 여기 나오는 머신팀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말은 사마리탄의 기본설정 위에  쇼가 예상하거나, 또는 기대하는 모습이 일정정도 투영됐다는 것 . 쇼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속이기 위해 필요한 변화였을 것이다

 

여기서 리스와 핀치는 다소 거리를 유지하며 이성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반면, 루트는 다정하고 친밀하며 끝까지 쇼를 믿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루트에 대한 이런 묘사도 실은 쇼의 내면에서 나왔다는 점 역시 이번 에피의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504에 나오는 루트쇼의 모습은 사실상 대부분이 쇼의 의지에 의해서 구체화 된거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가 사마리탄으로선 둘의 내밀한 관계를 절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쇼에 대한 루트의 감정이  친한 동료 이상이란 것과  쇼가 은연중에 루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쇼 본인에게 나온 정보가 아니면 사마리탄측에선 파악할 수 없는 부분. 그래서 여기서 보여지는 루트의 말과 행동들이 더 의미심장하다.

루트가 시뮬안에서 맡고있는 역할이나 태도를 봐도  그녀와의 교류가  쇼의 심리상태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단 걸 알 수 있고. 

 

 

아마 제작진은 쇼가 실제라면 표현하지 않았을 내면 깊숙한 곳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한테 솔직할 수 있는 방법으로도 이 시뮬레이션을 선택한 것 같다. (쇼한텐 미안하지만 그 안에서 퉁명스럽게 자기 표현하는 모습들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특히나 쇼 팬들에겐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에피였을 것이다. 액션부터 감정연기까지 정말 열연한 사라ㅜ)

 

 

 

 

 

 

 

 개인적으론  쇼가 이나마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훈련도 훈련이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 해도 태생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절대 버틸 수 없을 상황이니까.

 

그러나 그런 쇼 조차 마지막 궁지로 몰린 상황이 6741번째 시뮬.  쇼가 보이는 여러 감정적 리액션들도 이미 심리적인 외벽이 많이 무너져 있다는 증거일 것. 앞에서 쇼는 자신의 정신적 안전지대에 대해 얘기하는데 마지막에 루트를 놀이터로 데리고 와서는 '더이상은 여기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역시 전에는 그곳으로 도망치는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여기서도 도망칠 수 없고 이곳 역시 사마리탄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의미로 보인다. 아마 루트에게 한 말도 그런 절박함에서 나온  고백이었던 것 같다.

 

 

쇼가 이 모든게 시뮬레이션인 것을 알았냐 , 몰랐냐, 알았다면 언제부터 알았냐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부분인데  명확치는 않다. 여러 팬들의 해석을 봤지만 뭔가 딱 맞아떨어지는것 같지가 않아  물음표로 남겨 놓는다. 다만, 조나 놀란의 인터뷰 조각에 따르면  쇼의 자살은 루트를 죽이지 않기 위해 한 선택이라고 함. (아마도 루트를 따라감/ 루트를 죽임 / 자살 이라는 선택지 중에)  

 

 

 

 

 

 

이렇게 504는 전체적으로 인물이나 상황이  묘하게 생략 또는 과장 된 걸 볼 수 있는데  아무리 '현실'처럼 보이려고 노력해도 결국 진짜 현실이랑은 어딘가 다르다는걸 대부분의 시청자가 느꼈을 거다. 그리고 이런 위화감은 4-11에서 인물마다 성격과 특징, 행동패턴이 리얼하고 섬세하게 묘사됐던 '머신'이 행한 시뮬레이션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로 그려지는데  이것 역시 머신과 사마리탄의  차이점을 보여준것이란 시각이 있음.

 

나는 이 시뮬레이션을 보는 내내 마치 내가 쇼가 되어 겪는 것처럼 이 모든것이 어딘가 쎄하고 찜찜하고 , 알수없는 불편함과 어지러움을 느꼈는데  이런 거리감이 두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표현한거라면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반응이 갈릴 수밖에.

 

 

 

이 에피에선  쇼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또 악의를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을 어떤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지  퍼오인 안에서 가장 잔인하며 적나라하게 보여준 에피였다.  또 쇼가 홀로 하고 있는 처절한 분투 +  솔직한 마음과 약해졌을때 드러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고.  근데 이 모든 일들을 정작 머신팀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비극이다ㅜ

 

아무튼 이 에피를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은 분명하되 실현은 불완전한 시뮬이라는 점에서 이런 의도된 생략과 변형을 보며 흥미롭다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이런 낯선 흐름이 거슬릴수밖에 없고. 

 

 

나에게는 고통스럽기도 , 애처롭기도, 기쁘기도한 혼란스런 에피였다.